본문 바로가기
운동

주짓수를 배우는 이유

by skarly 2020. 9. 28.


 흔히 주짓수의 좋은점을 이야기 할 때 많이 언급되는 것들은 호신술로서의 자기방어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점, 근지구력 향상 등 컨디셔닝 운동으로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점, 그밖에 멘탈강화, 주짓수 커뮤니티와 문화, 철학 등을 들 수 있다. 다 맞는 말이지만 내가 주짓수를 배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주짓수를 배우는 일이 재미있어 보여서이다. 그건 너가 원래 운동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냐, 운동 싫어하는 사람은 재미를 못느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 것과 주짓수를 시작하게 된 데에는 사실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것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느낀 ‘재미’의 요소들에 대해서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운동을 많이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해온 사람 축에 속한다. 필요에 의해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내가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과 부합한다. 나는 필요가 없다면 운동을 안했을 것이다. 운동을 안해도 몸이 안아팠으면 운동을 안했을 것이다. 아마 운동 말고도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서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운동을 꾸준히 한다. 내 건강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영이 그랬고 헬스가 그랬다. 하지만 주짓수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나는 영상 찍는게 직업이고 우연한 기회에 주짓수 관련 유명인을 인터뷰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주짓수에 관해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주짓수의 모든 테크닉은 인내와 절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운동의 기술이 인내, 절제와 관계있다고? 힘과 스피드가 아니고? 이 난데없는 두 단어가 나에게는 너무나 신선했다. 그래서 조사를 좀 해보기로 했다. 내가 앞으로 주짓수 관련 영상을 또 찍을 일이 있든 없든 이런 핵심개념은 이해하고 있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즉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좀 조사를 하면서 주짓수의 테크닉들이 만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왜 주짓수를 휴먼체스라고 부르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주짓수 역사와 그레이시 가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헤너그레이시의 주짓수 원리에 대한 인터뷰를 보고 나는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주짓수를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유튜브에서 봤을 바로 그 영상이다. 내가 그 영상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은 이유는 그 영상 자체의 내용보다도 헤너그레이시가 그 영상에서 뿜어내고 있는 어떤 정서 때문이었다. 이 사람에게 주짓수는 어떤 신념이나 사명같은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물론 어느 정도 연출된 영상이겠지만 헤너그레이시의 진심이 느껴졌고 주짓수에 빠져있는 다른 사람들도 성향이 상당히 매니악하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주짓수에는 사람을 빠져들게할만한 뭔가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뭔가를 ‘재미’라는 단순한 단어로 표현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면 그 재미의 본질은 ‘로직’이다. 주짓수의 테크닉들은 굉장히 논리적이고 어떤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에만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다. 처음에 언급했던 인내와 절제는 바로 그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다. 이 인내와 절제를 좀 다르게 표현하면 침착한 관찰, 정보수집, 냉정한 판단, 실행, 시행착오 수정이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저런 것들이 핵심이다. 사실 이런 거창한 얘기를 하면서 주짓수 배운지 한 달된 하얀띠 0그랄 주제에 어디 감히 본질을 논하냐? 라고 스스로를 검열한다. 뭐 솔직히 욕먹어도 상관없다. 어디까지 나라는 개인이 내린 판단일 뿐이니까. 이런 과정도 시행착오에 포함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참교육해주길 바란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주짓수의 이러한 특징들이 나의 본업인 시네마토그래피 및 글쓰기와 닮아있다는 점이다. 기술을 배워야 하고, 배운 기술을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연마해야 하고, 언제 어떤 기술을 써야할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시네마토그래퍼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베이스엔 ‘로직’이 작동한다. 정확한 인과관계에 근거한 판단, 이를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숙련의 시간 등이 시네마토그래피를 공부하는 과정과 너무나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