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길리엄 플린, 나를 찾아줘 Gone Girl

by skarly 2014. 7. 1.

 이 소설에는 처음 보는 것이 있다. 실종된 아내를 찾으면서 드러나는 팜므파탈의 속성이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슈, 마치 알랭 드 보통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보편적인 주제, 바로 '노력하기를 멈춘 남편'에 대한 실망과 처벌이라는 점이다. 로맨틱 코메디에나 어울릴 법한 주제를 스릴러 소설 속에 끌어들였는데 사실 웃어넘기기에는 굉장히 절박한 문제이며, 행복의 척도와 관련된 것이라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와 서사의 외형이 잘 들어맞는다. 사라진 아내를 찾는 일은 필연적으로 왜 사라졌는가?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일이다. 아내의 기획이 드러난다는 반전과 남편의 선택, 아내가 내몰리는 과정 끝에 나온 결말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한 대답으로서 손색이 없다. 


 에이미가 닉을 엿먹이려고 했던 이유는 닉이 더이상 에이미가 원하던 사람이 되기를 멈췄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판단하기 여려운 윤리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상대에게 나의 고유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가 보고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까? 반대로 이러한 것들을 상대에게 요구해도 되는가? 너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줘야만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너무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며 쉽게 대답을 내리지 못할 질문이다. 사람들은 손쉽게 얘기한다. 모든 것을 주는 게 사랑이다. 또 반대편에서도 손쉽게 말한다. 상대 앞에서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을 때 그것이 사랑이다. 언제나 우리는 이 양극단 사이에서 어딘가를 선택한다.


 소설 전체의 주제라 할만한 문장을 꼽아보았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내 안에서 에이미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에이미는 사라졌지만 내 안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생생했다. 내가 에이미와 사랑에 빠졌던 이유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 최고의 남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초인으로 만들었고,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했다. 그녀는 가장 쉬울 때조차 어려웠다. 그녀의 뇌는 언제나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초월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등해지기라도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그녀에게 보낼 평범한 이메일 한 통을 쓰는 데도 한 시간이 걸렸고, 그녀가 내게 계속 흥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아라카나(타로 점을 칠 때 쓰는 카드)를, 호반 시인들을, 결투할 때의 에티켓에 관한 규범을, 프랑스 혁명을 공부해야 했다. 에이미의 사고는 넓고도 깊어서 나는 그녀 옆에서 점점 똑똑해졌다. 더 사려 깊고, 더 활동적이며, 더 생동감 있게 변했다. 마치 전기가 흐르는 사람 같았다. 왜냐하면 에이미와 함께하는 사랑은 마약이나 술 또는 포르노 같았으니까. 그것에는 정점이 없었다. 똑같은 효과를 내려면 지난번 것보다 더 강렬한 자극이 필요했다. 

 에이미는 나로 하여금 내가 특별하다고, 내가 그녀 수준에 부합한다고 믿게 만들었고, 바로 그것이 우리를 가깝게, 또 멀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위대한 요구들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편안함과 평균 수준의 사랑을 갈망하기 시작했고, 그런 나 자신을 혐오했으며, 결국에는 그것 때문에 그녀를 벌하고 있었다. 에이미를 지금의 날카롭고 성마른 사람으로 만든 것은 나였다. 나는 어떤 부류의 남자인 척하다가, 사실 내가 그런 부류와는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더 나쁜 것은, 나는 우리의 비극이 그녀 혼자 만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몇 년 동안 내가 그녀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 독선적인 분노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길리언 플린의 전작 다크 플레이스를 읽고 사건보다는 캐랙터에 많이 의존하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곤 걸의 서사는 다크 플레이스보다는 더 역동적이지만 역시 에이미라는 캐랙터가 서사의 많은 부분을 책임진다. 에이미가 가졌던 동력이 노력하지 않는 남편이라는 보편적인 주제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야말로 단순한 싸이코패스로 보였을 것이다. 주제, 인물의 동력이 가진 보편성은 이래서 중요하다. 작가는 소설 초반에 이러한 것들을 잘 쌓아올렸다. 인물은 특별해야 하지만 품고 있는 이슈는 보편적인 것일 수록 좋다.


이 기회에 다크 플레이스에서 기억에 남았던 문장들을 찾아내본다. 정말로 캐랙터에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라한 나 자신에게 얼마나 화가 나던지. 왼손 약지는 뭉툭하게 잘려서 이제 어떤 남자가 결혼반지를 건네도 끼지 못할 테고, 오른발은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해서 내륙에 살면서도 늘 배 타는 사람처럼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돌아다녀야 한다. 거기다 또래 여학생들은 내 손가락을 보고 '돌기' 같다고 했다. 신기하다는 말인지 아니면 징그럽다는 말인지 모를 정도로 애매모호해서 더 기분이 나빴다. 최근에 본 어느 외과 의사는 '의욕 넘치는 시골 의사'를 만난 모양이라며 반드시 절단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발육이 늦어 땅꼬마였던 나는 세탁기와 건조기 세트가 들어갈 법한 벽장 안에서도 잠을 잘 수 있었고, 이모는 나를 위해서 벽장 안을 새로 칠해주기까지 했다. 근무 시간을 연장해서 일했고 나를 데리고 토피카를 오가며 심리 치료를 받게 했으며 언제나 애정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모에게는 나를 안는 것조차 아픔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여동생이 살해당했다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존재가 바로 나였으니까. 이모가 나를 안으려고 팔을 두를 때는 마치 훌라후프를 하듯 최대한 살이 닿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매일 아침 꼬박꼬박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걸 잊지 않았다. 


 청승맞게 예수의 사랑을 권장하는 광고판이 포르노 광고판만큼이나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