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들로부터 강한 자를 지켜야 한다"
이 니체의 잠언이 딱 들어맞는 시대가 지금이다. 오늘 한 친구와 함께 이 문제에 관해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시작은 "왜 이렇게 패배의식을 가진 인간들이 많은가?" 라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이 현상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이 대화를 계기로 이 문제에 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글로 정리해보기로 했다. 일단 문제가 되는 현상이 몇가지가 있는데 그것을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왜 요즘 중고등학생들의 상당 수는 공부를 포기하는가?
2.왜 상당 수의 젊은이들이 꿈, 노력, 목표를 가지는 일을 거부하는가?
3.왜 젊은이들이 용기를 가지고 뭔가 일을 도모하기를 두려워하는가?
뭐 사회가 잘못되었고 시스템이 문제고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물론 시스템의 문제는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과거의 인간들이 시스템의 문제 속에서도 저항하고 투쟁하고 모색했다면 현재는 너무 많은 인간들이 문제의식은 커녕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진짜 옛날 SF소설 속의 디스토피아가 도래한 것만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은 자신이 패배자라는 생각을 가지고는 오래 살아갈 수 없다. 내가 지금은 이모양이어도 언젠가는... 이라는 생각 없이 인간은 패배를 견딜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보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패배의식을 가지고도 별 문제없이 잘 살아간다. 즉 여기엔 꿈, 노력, 목표 없이도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만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등장했고 인간다움에 대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신인류가 여기 존재한다. 99년도에 영화 매트릭스가 개봉한 이후로 매트릭스라는 단어는 거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2023년의 매트릭스는 99년도에 워쇼스키 형제가 은유적으로 보여주었던 것과는 좀 다른 형태를 가진다. 나는 그것을 가짜 즐거움과 가짜 도덕성이라고 부른다.
"인생 별거 없다. 잘먹고 잘살고 즐기다 가면된다"
가짜 즐거움을 암시하는 가장 흔한 표현이다. 이러한 즐거움에는 가치판단이 빠져있고 냉소가 존재한다. 쾌락에 질적 등급이 있으며 그 기준이 경험자의 판단이라는 밀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인류는 너무 많은 뉴미디어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의미의 쾌락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이 너무 많을 때 상상력은 제한된다. 신인류는 자신들이 경험한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더 넓은 범위의 쾌락에 대해서 상상하지 못한다. 이것은 '인생 별거 없다'는 냉소로 이어진다. 이 문제는 미디어 환경과 교육의 개선에 의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행여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소수의 축복받은 사람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쾌락을 맛보기 위해 선을 넘을 것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가짜 도덕성의 문제다. 나는 이 문제가 PC주의, 페미니즘, 일베현상, 우경화 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도덕성은 인간의 감정에 반하는 논리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지금의 도덕성은 개개인의 감정과 기분을 과도하게 고려한 나머지 괴상해졌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추후에 구체적인 사안들을 살펴보면서 다루는게 맞아보인다. 지금은 아주 원론적인 수준에서 내가 무엇인가 고약한 냄새를 맡았다는 점만 적어두고 싶다. 인간은 손쉽게 도덕성을 확보하려는 거의 본능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지금 이 상태 그대로 도덕적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인류는 특정한 상황에 인간이라면 마땅히 이래야한다는 원칙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도덕을 세우기를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도덕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었던 나머지 도덕의 빈자리에 기분과 감정(공감)을 내세웠다. 이것은 혀를 마비시키는 달콤한 사탕 같은 것이다. 나는 예상보다 너무 많은 수의 인간들이 이 기분과 감정을 맞춰주면서 서로의 인생을 갉아먹는 것을 보았다. 공감, 이해, 존중이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쓰고서. 이것이 PC주의, 페미니즘, 일베현상, 우경화 집단의 실체다.
다시 인간에게 도덕을! 이라고 외치는게 옳은 일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확실한 한가지는 이것은 진보가 아닌 퇴보이며 인간은 점점 사유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이 문제에 관해 구체적인 사안들을 다루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