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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공교육에 대한 생각

by skarly 2014. 6. 1.

 나는 오래전부터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사실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옛날 학교 선생들은 형편없었다. 잘 가르치고 못가르치고 이런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인 소양이 없었다. 예전에는 학생인권 같은 것들이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고 폭력이나 처벌에 대한 개념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듣자하니 요즘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지금의 학교 선생들도 믿을 수가 없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이 임용고시를 보고, 무슨 목적으로 선생이 되려하는지, 그 과정은 어떠한지를 살펴보면 끔직한 수준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대체로 직업적 안정이다. 그들이 치루어야 할 과정은 고시공부다. 지금의 시스템 상 일단 교사가 되고 나면 더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할 이유가 별로 없다. 아니 어쩌면 더 좋은 선생이란 무엇인지 우리사회가 대답을 내놓은 적이 별로 없다. 물론 이것은 나의 한정된 지식에 바탕한 추론에 불과하고 사실 공교육에서 이런 요소들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공교육이란 그 특성상 사회적으로 합의된 특정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주면 된다. 그런데 그것의 내용을 누가 정하는가?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는 공교육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공교육이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딜레마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공교육의 시스템적 측면, 즉 교사 개개인의 신념이나 도덕성과는 무관하게 공적 교육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들과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통념 즉 선생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기대들이 서로 상충한다는 이야기이다. 일단 공적 교육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선생 개인의 신념이나 도덕성이 아이들에게 여과없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전교조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선생님들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신념이나 도덕성이 공공연히 아이들에 전파된다고 생각하면 끔직하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은 사회적 합의를 위반한 것이 되고,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세뇌교육이나 선동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에 관한 공적 합의를 반드시 지키려고 할 경우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생에게 기대하는 것들은 충족되어질 수 없다. 인성교육이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인성교육을 하자는 주장은 교사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해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과 신념, 세계관 등을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가르쳐야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것은 공적 교육이라는 취지와는 정면으로 부딛힌다. 모든 교사가 같은 윤리적 성향을 가지고 있을 리도 만무하고 에초에 모두가 옳은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윤리적 기준을 정한다는 일 자체가 굉장히 어려워보인다. 교과서의 내용 문제에 사람들이 그토록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집고 넘어가야할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공적 교육의 내용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적이 있는가 하는 문제다. 보통 사람이 교육정책에 관여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만한 일은 교육감 선거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양당제라서 누가 당선이 되어도 나머지 절반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교육감은 선거로 뽑는다 할지라도 교육의 내용은 모두의 합의가 필요하다. 사실 여기서 아주 식상하고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나는데 모두가 이 나라 공교육의 내용이 엉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경쟁구도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교육의 내용보다는 경쟁에서의 승리에 더 큰 의미를 둔다는 말이다. 더 밀어붙여 보면 교육은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등수매기기의 한 방편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단 하나의 기대만 포기하면 손쉽게 해결되는 문제일 수 있다. 공교육에서 인성교육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철저히 배제하면 된다. 다만 합의에 의해 정해진 최소한의 규칙과 의무를 학생들에게 부과하고 교사들은 기능적인 교육만을, 오직 지식 전달자이자 학습 도우미의 역할만 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이 학교와 교사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져야 하며 학교에 다니는 일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자니 사교육이 판을 칠 것같다. 결국 공교육이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 딜레마가 발생한다. 공교육이 정상화되려면 공교육의 기능이 최소화되어야한다. 이는 사교육의 팽창을 가져온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사회 전체를 뜯어고쳐야될 것처럼 보인다. 대학서열화와 학벌경쟁에서 이어지는 취업경쟁과 같은 것들을 건드려야한다. 그래서 아직도 이 문제는 수십년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보면 좋은 선생님의 좋은 강의를 누구나 들을 수 있게 하는 문제는 통신, 과학기술로 상당히 극복할 수 있다. 정말로 사교육을 잡고 싶다면 사교육비 많이 쓰는 사람들에게 세금 팍팍걷어서 이러닝 등 교육 서비스에 투자하면 되지 않을까? 지금의 통신, 과학기술이면 이것만으로 상당한 수준의 교육평등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가 딴데로 셋는데 아무튼 이러한 대안과 관련된 얘기는 물론 내가 뭘 잘 알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상식 수준의 정보를 바탕으로 한 일차원적인 추론일 뿐이다. 

 

 결국 이 주제에서 최종적으로 봉착하게 되는 문제는 교육 문제에 있어서 사교육 팽창 문제와 공교육의 사회적 합의 문제를 따로 떨어트려 놓고 보는 것이 맞는가 하는 문제다. 나는 일단 사교육이 팽창하더라도 공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차피 사교육은 막을 수 있는게 아닌 것처럼 보이고 무엇보다도 선생의 쓸데없는 권위, 학교라는 집단의 온갖 부작용들, 그로 인해 전체적으로 낮아지는 교육의 질 등을 공교육에 대한 재합의, 즉 모두가 싫어하는 <학교의 학원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거부할 수 있는 학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도 학교는 그런 곳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느냐... 학교 선생과 학원 선생은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나는 이러한 주장들이야말로 아예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