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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니퍼 폭스, 이야기 Jeniffer Fox, The Tale

by skarly 2018. 9. 15.








올해 여성인권영화제의 가장 논쟁적인 영화 한 편을 뽑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이 영화다. 이 영화는 13살짜리 여자아이가 성인 남자와 섹스하게 되는 과정이 어떤지를 보여주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1.여자아이가 성인남자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성인남자는 그것을 섹스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2.여자아이는 자신이 자율적으로 행위에 가담했는지 아닌지에 관해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내용은 즉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소환한다


1. 관계에는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반영되어 있는가

2.그것을 자율성이라고 말할 있는가?

3.여자아이의 마음 속엔 어떤 방식의 인정욕구가 작동하고 있는가?

4.여기서 사회가 해야할 역할은 무엇인가?


전부 생각해볼 지점이 있고 쉽게 판단내리기 힘들다.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13살짜리와의 섹스라는 앙상한 사실만 본다면 비교적 가치판단하기 쉽다. , 이건 누가 봐도 심해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여성의 나이, 가해자 남성의 나이, 사람이 처한 문화적 환경 등에 변주를 가하면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지며, 복잡한 문제야말로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문제다. 최종적으로 소환되는 질문은 


온정적 간섭주의의 범주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이다. 우리는 노예상태에 있으면서 주인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행복해하는 노예를 설득할 수 있는가?(옥타비아 버틀러 : 응 그런거 없어) 우리는 매맞는 아내가 여전히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디까지 푸시할 있는가? 끝까지 밀어붙여 본다면, 평생 반경 10키로 밖으로 움직이지 않는 염소에게 반경 11키로 짜리 울타리를 쳐놓으면 그 염소는 자유로운가? 구속되어 있는 상태인가? 인류는 지구에 구속되어 있는가? 지구는 중력으로 인류를 구속하고 있는가?


문제를 두고 가해자에게 비윤리적이다고 호통치는 일은(필요하지만별로 유의미한 같지는 않다. 가해자의 도덕성을 탓할수록 온정적 간섭주의는 강력한 근거를 얻고 이는 곧바로 다른 형태의 억압과 이어진다. 문제는 우리에게 기준을 제시하길 요구한다. 그리고 기준은 어떤 이론적 근거보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될 확률이 높다. 18세부터 성인인지 19세부터 성인인지에 관해서는 명확한 이론적 근거가 있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합의는 어떤 방식이든 임의적일 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어떤 형태의 억압과 이어진다. 누군가가 멋대로 이하와 섹스해서는 안된다고 정한다면 필연적으로 불만이 생긴다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보이는 거의 유일한 견해는 파이어스톤이 주장했던 배타적이고 고립되어 있는 교육시스템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리고 근친상간 금기 없이, 어른들은 세대 이내에 자연적인 다형의 polymorphous sexuality으로 돌아올지 모르며, 생식기 섹스와 오르가슴의 쾌락에 집중하던 것은 그것이 포함된 완전한 육체적-감정적 관계로 대치될지 모른다. 아이들과의 관계는 아이가 있으면-우리도 현재 믿는 이상으로 상당할 것이다-생식기 섹스도 포함하겠지만, 생식기 섹스가 이상 관계의 중심점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오르가슴의 결여가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견해는 무시무시해 보인다. 결국 주장은 어린이에게 성인과 동등한 수준의 관계를 누릴 자유를 주자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를 마당에 이러한 주장은 우리의 직관을 거스른다. 그러나 어린이가 스스로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반드시 필요해보인다. 애초에 제니퍼가 부모의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웠다면, 성인남성으로부터의 인정같은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은 사회분위기 속에 있었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