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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

by skarly 2018. 7. 28.



당신이 Designer, Producer, Writer라면, 혹은 그 무엇이든 남을 대신해 아주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주고 돈을 버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다음의 3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일을 시작해야 한다.

 

1.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뭔가?

2. 누가 볼 것인가?

3. 어디에 게시할 것인가?

 

여기에 관해 답을 가지지 않은 채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 결과물의 내용은 “우리제품 짱 좋아요. 사세요!” 정도가 된다. 그 예를 들어보자.






예가 2개인데 산수유야 그렇다치고 김연아 나오는 영상은 왜?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잘 생각해보시라. 두 영상 다 별다른 할말이 있는게 아니라 대략 “우리 제품 짱좋아요.”를 반복하고 있다. 대신 뭔가 다른 것(출연자들의 정서적 반응)으로 앞의 1번 질문을 대신하는 전략을 쓰고 있을 뿐이다.

 

반면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결과물의 내용에 관해 1번 질문 하나면 충분한가? 대부분의 경우 충분하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많으면 사실 별로 좋은 결과물이라 할 수 없다. 하나면 충분하다. 그 예를 들어보자.







장끌로드 반담 다리 잘 찟는다는 건 알겠는데(볼보차의 안정성과 정교함이 짱이다는 건 알겠는데) 한동대학교 영상은 왜 예시가 되었을까? 물론 한동대 영상에는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딱 하나다. “대학교에서 진짜 저렇게까지 해?” 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영상의 목적이다. 국내 명문대학들이 관공서식 홍보영상으로 삽질하고 있을 때 한동대는 신입생을 타겟으로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저런 영상을 만들었다. 당시 나를 비롯해서 다른 학교 홍보영상을 만들던 피디들은 왜 저렇게 못만드냐고 욕먹고 다녔다.(느그가 만들덩가)

 

기획의 핵심, 내가 만든 결과물을 소비하는 사람으로부터 반응을 이끌어내는 코어를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라고 부르기로 하자. 지금부터 할 얘기는 트리거 포인트가 없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가이다. 시작은 클라이언트가 말이 많아진다. 이것저것 요구하면서 무난한 수준의 결과물을 처참한 수준의 결과물로 만들기 시작한다. 마치 노인과 바다의 노인과 같은 꼴이 난다. 어렵게 잡은 물고기가 집에 오는 길에 상어떼에게 다 뜯겨먹힌다. 그래서 무난한 결과물은 처참한 결과물과 같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난한 결과물은 결코 무난하지 않다. 나는 최소한 나쁜 평가는 안받을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어쩌면 좋은 평가를 받고도 남았을텐데 결과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는다. 돈과 시간을 허비했지만 다음번 일이 끊긴다. 때문에 트리거 포인트는 최소한이며 필연이다.

 

매순간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란 말인가? 그정도로 여어어어얼심히 노오오오오력 하라는 말인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의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트리거포인트다. 트리거 포인트에 관해 생각하는 일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양아치짓과 같다. 단 하나의 매력 포인트로 다른 단점들을 상쇄시키는 일이며 나의 전체적인 역량을 숨기고 편법과 요령으로 일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시간과 돈을 아끼는 일과 직결된다. 하지만 나쁠게 뭐가 있는가? 클라이언트가 만족하고 내가 편하다면 좋은거 아닌가? 한동대 영상을 만든 사람이 도대체 얼마를 남겨먹었을지 생각해보자.(크레인 장면 딱 한컷 들어가 있다. 나머지는 픽스 아니면 슬라이드. 트라이포드 없이 그냥 들고 찍은 부분도 많다. CG는 거의 없는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