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또오해영과 청춘시대

by skarly 2016. 8. 24.

연애시대, 하얀거탑 이후로 한국 드라마는 거의 끊다시피 하고 살았는데 최근 이 두 편의 드라마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한국드라마 하면 이슈가 너무 사랑타령 중심이고 그마저도 이슈에 집중하기 보다는 잡스러운 얘기들로 러닝타임을 채운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두 드라마는 나의 그러한 편견을 깨트려주었다.


일단 또오해영은 이슈자체가 특별했다. 결혼이 잘못된다는 것이 한 개인에게 어느 정도로 강력한 심리적, 물리적 제약을 가하는지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와 더불어 조연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자주 보던  순정만화틱한 발상이 아니라 거의 처세술에 가까운 서사를 보여주었다. 타의에 의해서 혹은 셀프조연되기라는 주제와 자신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겪어야만 하는 심리적 모험들은 뛰어난 성장드라마의 서사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등장인물이 가진 서브플롯도 거의 낭비가 없었다. 에릭의 동생이랑 그 귀여운 여자애의 다소 과장된 형식의 연애와 에릭-서현진 쪽의 대비는 '권력 관계로서의 연애'라는 주제를 환기시킨다. 예지원 쪽도 마찬가지. 뒷쪽에 에릭의 증상?에 관한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서사는 빈약했지만 전반적으로 풍성하며 이슈를 놓치지 않는 서사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청춘시대 역시 비슷한 미덕을 가지고 있다. 5명 각각이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이슈를 가지고 있고 그 이슈를 소비하는 맥락을 제대로 집고 있다. 어찌보면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 상반되는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 하나는 특별하지 않다고 다른 하나는 맥락을 제대로 집었다이다. 일단 나는 맥락을 제대로 집었다면 좀 관대해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나만 두려워 했던 게 아니었다. 모두가 나름대로 두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는 대사나 "내가 너보다 잘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너만큼의 유혹이 없었을 뿐이다." 이런 대사들 앞에서 특별하지 않아서 시시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즉, 이야기의 외형에 특별함이 좀 떨어지더라도 메시지/텍스트가 어떤 특별함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외형이 정확히 그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면, 그리고 외형과 텍스트의 싸이즈가 서로 비슷하다면 꽤 괜찮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외형도 메시지/텍스트도 둘 다 짜칠 때 문제가 되는거지. 그리고 특별함 부분을 보충해주기 위해 신발장 귀신과 관련된, 인물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이슈들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붕 떠있지 않고 인물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슈들의 연장선 상에서 작동한다.(아직 마지막 회를 보지 않아서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긴 이르지만)


문득 내가 사연있는 여자 컨셉에 끌리는 경향이 있어서 과도하게 좋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이상한 셀프검열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는데 뭐 그렇다치더라도 이슈의 선명함과 서사의 풍성함은 분명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왕좌의 게임보다 요런 드라마들을 보는 게 훨씬 더 재미있다. 도대체 왕좌의 게임은 뒷일을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는지...관통하고 있는 이슈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