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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언 맥큐언, 속죄

by skarly 2016. 7. 25.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읽는 내내 아주 재미있었지만 엔딩은 많이 아쉽습니다. 브리오니가 로비와 세실리아의 밀당?을 오해해서 로비에게 누명을 씌운다는 이야기는 아주 명확하게 다음 이야기를 강제합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나중에 소설 전체를 읽고 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내려집니다. 극복 못한다. 이게 답이지요. 아무튼 소설을 읽는 동안은 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으며 어떻게 결국 다시 만나게 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서 브리오니 개인의 성장과 결자해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목이 속죄니까요.


2장에 나오는 로비가 다이나모작전 중에 겪는 이야기들은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충분히 이야기할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파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기 위해 돼지를 잡는 이야기나 군중의 광기에 의해 죽을 수도 있었던 공군 행정병을 탈출시키는 이야기가 그런 것들이죠. 이것들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교회장면과 성격이 좀 비슷합니다. 전체 서사에는 별 관련이 없지만 그 자체로 재미있는 것들이죠. 이 사건들이 전체 이야기와의 유기성을 가지려면 로비와 세실리아의 관계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데 직접적으로 그런 것을 만들기는 힘듭니다. 이언 맥큐언이 잘한 것중 하나가 로비가 편지에다가 어떤 일은 적고 어떤 일은 적지 않는가를 통해 그것을 해낸 일입니다. 편지를 통해서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시간을 잘 견딜 수 있게 나름대로 현실을 편집합니다. 뭐 어떻게 보면 편리하게 보일 수 있는 방식이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사랑이 유지/진화하는 방식이라는 주제에 정확하게 접근하면서 정서적인 효과도 충분해서 저는 굉장히 좋은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관능적인 기억들 - 서재에서 함께했던 몇 분과 화이트홀 버스 정류장에서의 키스 - 은 너무 자주 불러내어 이젠 그 색깔이 바래버렸다. 이런 문장은 군대 등에 의해 생이별을 겪어본 남자라면 한번 쯤 가슴을 부여잡고 눈을 감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3장은 브리오니가 결자해지를 위해 행동에 나서는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1장의 이야기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리오니가 어떻게 바로잡으려고 하는가 보다는 1장의 사건이 탈리스 자매의 삶과 로라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에 상당한 분량이 할애됩니다. 브리오니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언젠가는 결행에 나서 멋지게 이 상황을 바로잡아 주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롤라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장면은 그런 긴장감이 전면에 나서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장면이지만 여기서 왜 브리오니가 별 말 없이 자리를 떳는지, 왜 세실리아를 찾아가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별 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브리오니는 두 번 다시 로비를 보지 못했고, 그는 뒹케르크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세실리아도 공습맞아 죽었으며, 지금까지 이야기는 브리오니가 쓴 소설이다는 사실이 반전으로 사용됩니다. 여기서 독자가 1차적으로 느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슬픔이고, 곧 그 슬픔을 제껴두고 브리오니를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끝끝내 속죄하지 않았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며 브리오니를 보게 되는 것이죠. 그 다음 내용은 브리오니의 변명과, 나머지 가족들 중 누구도 로비와 세실리아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이런 스케일의 이야기가 주는 결론으로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반전이 사용되었을 때 생기는 슬픔이 꽤 커서 소설이 해야할 것을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