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by skarly 2015. 9. 24.

반전, 급전, 의외성 이런 것들이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것이고 이야기를 듣는 본질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하지만 의미상으로 완결된 텍스트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소설에서 독자가 가장 즐기고 있는 부분은 주인공 토니가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 사랑의 파괴, 파괴된 사랑에 다신 한번 손 댈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다루는 가이다. 이 소설을 평할 때에 자주 등장하는 기억이나 역사에 관한 주제는 사실 핵심이 아니며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내가 아는 한 문학에서 다루어 온 기억과 관련된 주제는 두 가지다. 기억이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블레이드 러너 등 SF소설), 그리고 윤리적인 이유로 기억이 왜곡되는 일.(올드보이, 속죄 등) 이 소설에서는 이 둘 중 어느 것도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기억보다는 자신에게 찾아온 감정, 수치심, 혼란 이런 것들을 토니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관련된 이슈들이 전면에 나와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데미안이니 호밀밭등 뭇 성장소설들과 잘 비교된다. (이 주제를 변태적으로 밀어붙이면 지하생활자나 금각사같은 소설이 나오는 것 아닐까) 아쉽게도 이 소설은 토니가 벌어진 사건의 전말을 다 알게되는 시점에서 바로 끝난다. 이는 정말 중요한 질문에 답하지 않은 셈이다. 이 소설이 서사적 완결성을 가지기 위해 요구받는 것은 1.베로니카와의 사랑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 2.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새로운 사건)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중에 토니가 내적으로 투쟁하는 대상은, 자기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사실, 이제껏 해왔던 자기기만...뭐 이런 것들이 될 것이다. 이도 저도 못하겠으면 절간에 불이라도 질렀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길거리가 풍성한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모두가 높게 평가하는)과거의 자살 사건을 환기시키면서 에이드리언의 자살의 의미를 추리하는 과정과 역사에 대한 텍스트들을 접목시킨 점, 베로니카라는 매력적이면서도 보편성 있는 캐랙터(누군들 숭상하던 여인에게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서신을 주고 받으면서 구축되는 양파껍질과 스릴러소설적인 면모 등 많은 뛰어난 점이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책을 다 읽고 다시 읽게 만든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