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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사이드아웃

by skarly 2015. 7. 21.

 이 영화가 잘 된 영화인지 아닌지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두 가지 측면을 말할 수 있다. 


1.기쁨이와 슬픔이의 여행이 모험물로서 재미있는 요소가 있는가? 

2.모험의 과정이 '슬픔도 필요하다'는 주제와 닮아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실패했다. 


 먼저 이 모험이 어떤 기획을 가지고 관객에게 재미를 주려는지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계를 관객에게 소개하고 그 세계가 얼마나 기발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기억과 무의식을 기본으로 창조해낸 새로운 세계는 얼핏보면 기발하지만 그 속에서 겪는 모험의 속성은 모두 비슷하다. 어떤 설정들이 끊임 없이 제공되는데 라일리의 퍼스날리티와 관련된 오브제들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재미가 보장되지 않는다. 어떤 비유나 상징들을 읽어낼 때 우리가 어느 지점에서 감흥을 받는지를 되집어보자. 그 첫 번째 조건은 비유나 상징이 숨겨져 있다가 발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껏 계속 보고 있었음에도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관점의 변화와 함께 의미들이 조합되면서 짜릿한 쾌감을 느끼거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깜짝 놀랐던 경험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비유나 상징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은밀하고 희소한 것인가다. 두 번째 조건은 의미의 연결이 정확해야 한다. 상징은 현실의 어떤 사실, 구조를 정확하게 환기시킬 수 있어야 한다. 너무나 정확해서 그 비유가 합당하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인사이드아웃은 이런 면에 충실하지 못하다. '이번에는 가족섬이 무너지겠군!' 누구나 다 이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만 아동물로서, 낯선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비쥬얼이 형형색색 다채롭다는 점에서 충분하지 않냐고 반문한다면 약간은 동의해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기쁨이가 리어카?를 타고 쓰레기장에서 도약하는 장면이었는데 늘 자신이 주도적으로 긍정에너지?를 발산하던 기쁨이가 처음으로 타인의(빙봉코끼리?) 격려에 의해, 뭔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 오기? 같은 것을 드러내 보인다. 기쁨이스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야기가 주제와 닮아있는가라는 문제는 이야기의 성패를 말하는 데 있어서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슬픔도 필요하다'는 주제가 어떻게 구현되었나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기쁨이가 왜? 어떤 과정으로? 슬픔이에게 핵심 기억에 대한 접근권을 내어주는가라는 질문을 반드시 해야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명확하지 않으면 주제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너무 단순하면 주제도 별것 아닌 것이 된다. 기쁨이가 슬픔이에게 핵심기억을 건네주기 전에 깨달은 것은 슬픔이 있어서 가족과의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사건으로 말하자면 동그란 메모리볼?에서 기쁨의 순간, 슬픔의 순간, 가족의 순간이 연속되어 있는 것을 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이야기의 외형으로 돌아가서 이제껏 기쁨이가 겪은 모험들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해보자. 그 모든 모험을 싹다 덜어내도 주제를 구현하는데 아무 문제도 없지 않을까? 이 이야기는 흔히 말하는 프로세스가 생략되어 있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기쁨이가 슬픔이를 인정하게 되는 일이 너무나도 편리하다. 이것이 올바른 것이 되려면 기쁨이와 슬픔이 간의 자리싸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장 기쁨이와 슬픔이가 서로 투쟁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의미상으로 그런 사건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미 의인화된 감정이라는 설정이 있고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지 않았냐고 반문한다면 나 역시 쉽게 반론을 펼치기 어렵다. 또한 주제와 결론에 대해서 모두가 납득하고 동의했다면 영화는 성공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야기가 아동물이라는 점이 편리함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동의하고 있었던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아동물이든 설정이든, 모든 조건을 감안하고서라도 이야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라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