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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시

by skarly 2015. 7. 6.

평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는 보려고 했던 위플래시를 드디어 봤다. 사실 나는 음악영화나 예술가의 삶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에 대해 불신같은 것을 좀 가지고 있다. 예술가를 미화시켜서 얻어낸 파토스를 동력으로 앙상한 이야기를 끌고나가다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이런 류의 영화가 가지는 한계가 아닌가 싶다. 좋은 이야기는 특수한 외형과 보편적인 이슈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술가류 영화들에는 이 보편적인 이슈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기의 주요 이슈는 앤드류의 열정이 어떤 보상을 받는가이다. 테렌스 플레쳐식의 경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멀쩡한 여자친구와도 결별을 선언하는 등 그의 열정은 어떤 선을 넘은 것처럼 보인다. 일단 여기에 특수성이 있다. 이 자체로 낯선 것이기도 하거니와 영화의 표현 방법이 상당히 고어적? 이어서 더욱 더 낯설게 느껴진다. 


진짜 이야기의 시작은 앤드류가 실패하고 학교에서 쫓겨난 이후부터다. 앤드류는 어떤 상담사? 를 만나 플레쳐가 과도한 부담을 주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게되고, 교통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또다른 플레쳐의 학생이 목을 매고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듀르는 플레쳐를 옹호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자살한 학생의 부모가 원하는 것은 자기 자식과 같은 이가 다시 나오지를 않기를 바랄 뿐이다는 말을 듣고 플레쳐를 고발하는데 협조하기로 결심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여기라고 생각한다. 윤리적인 이슈가 정면에 등장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관객이 목격하는 것은 앤드류가 플레쳐로 인해 경험했던 부조리하고 과도한 열정을 여전히 긍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뒤의 이야기는 최소한의 의외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만 하다. 앤드류가 내제되어 있던 의지를 발휘해서 플레처에게 저항한다는 것, 그리고 승리를 따낸다는 이야기에는 의외성이 존재하고 통괘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윤리적인 이슈를 충분히 다루어주지 않아서 이야기가 얕아졌다는 점이 아쉽다. 진정한 비극 작가가 쓴 이야기라면 앤드류를 제 2의 플레쳐로 만들고 새로운 가해 대상은 관계를 회복한 여자친구와 앤드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결국 이야기의 내적 주제, 텍스트는 열정을 어떻게 다루어야만 하는가에 집중되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