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네가 있어준다면

by skarly 2014. 8. 10.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이후로 영미권 청소년 소설이 좋아졌다. 예전에 기억전달자를 읽고 이 분야의 작가들이 상당하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기억전달자 다음으로 인기가 있었다는 네가 있어준다면을 언젠가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자주 가는 까페꼼마에 책이 꽂혀 있어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지만 역시 뛰어난 소설임이 분명하다.


이야기의 강한 동력은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만 살아남은 미아가 자신도 세상을 떠날 것인지 아니면 끔찍한 상황을 감수하고도 세상에 남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강한 이슈로부터 나온다. 병원에서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미아는 유체이탈 상태 같은 것을 경험하는데 그 와중에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클리쉐하지만 명확하고 강력한 이슈들이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미아의 남자친구인 애덤과 동성 단짝친구인 킴이 어떤 식으로 연대하게 되는 가에 관한 부분인데 이 서사에는 아주 세련된 구석이 있다. 


1.둘다 대학에 가서야 연애를 할 것 같던 단짝 친구 중 하나에게 예상 외의 남자친구가 생겼다.

2.남자친구가 생긴 여자애들이 빠지는 함정, 우정을 어떻게 취급하는가에 관련된 문제들을 경계하기로 한다.

3.미아는 남자친구와 킴이 좀 더 서로 좋아하고 친해졌으면 하지만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다.

4.킴은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애덤과 킴은 미아에 대한 애정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5.미아가 혼수상태에 있을 때 킴과 애덤이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이어져 있음’이 어떤 것인지 미아가 깨닫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고등학생들의 유치한 우정타령이 되어버릴 수 있는 이야기가 강력한 사건, 미아의 사고를 계기로 연대라는 개념으로의 도약이 일어난다. 유치한 이야기에서는 아마 사랑과 우정이 공존할 수 있다느니, 차라리 우정을 택하겠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 테지만 여기서는 미아의 사고라는 큰 사건이 들어오고 미아가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한다는 내용이 들어옴으로서 서사의 격이 높아진다. 


미아가 첼로를 때려치우려다가 계속 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는 음악 캠프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때로는 맹목적인 경쟁과 노력이 진정한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통찰이 새롭다. 


나는 엘리자베스라는 열일곱 살짜리 비올라 연주자 뒤에 앉았다. 캠프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로 손꼽히는 엘리자베스는 토론토 왕립음악학교에 합격한 상태였다. 게다가 모델처럼 예뻤다. 키가 크고 기품 있으며, 커피색 피부에, 광대뼈는 얼음이라도 깎을 듯 날렵했다. 엘리자베스의 연주만 아니었다면 나도 그애를 싫어하고 싶은 유혹에 빠졌을 것이다. 비올라는 주의하지 않으면 노련한 연주자의 손에서도 끔찍한 비명을 내지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애의 손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맑고 순수하며 경쾌했다. 그 애의 연주를 듣고, 그 애가 음악에 얼마나 깊이 빠져드는지 지켜보다보면 나도 그렇게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 잘하고 싶었다. 단지 엘리자베스를 이기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 애와 같은 수준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빚을 진 기분이었다. 엘리자베스에게, 모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