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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죽음의 부작용,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by skarly 2014. 8. 3.

병 이야기는 언제 봐도 재미있는 서사의 아이템이다. 남이 아픈 걸 보고 재밌다고 하는 것 자체가 좀 괴상하지만 적어도 서사 속에서 병이란 게 정말 재밌는 건 사실이다.  뛰어난 작품들 속에서 병은 어김없이 사람들의 운명을 비틀고 선택을 강요한다. 이게 재미의 본질이다.  이 작품 속에는 ‘암의 부작용’ 이나 ‘죽음의 부작용’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그 어떤 병의 서사도 병이나 죽음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부작용을 다루며 이는 이야기의 좋은 주제가 된다.

병의 부작용들은 물리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말하자면 수도 없지만 이 중에서도 주로 이야기에 힘을 부여해주는 측면은 바로 윤리적 의무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병든 사람에게는 건강한 사람과는 다른 의무가 부과되거나 일반적인 의무가 면제되기도 한다. 이러한 의무의 특별함, 혹은 흐릿한 경계들 때문에 병자는 끊임없이 철학자가 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자면, 병과 싸우는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이기적이어도 되는가?’, ‘내 병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어느 정도까지 희생시켜도 되는가?’ 등의 질문으로 구체화 시킬 수 있다. 

내가 이 분야(병류 작품)에 좋은 작품들만 접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 분야는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물처럼 보인다. 단순히 병의 종류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앞서 말했듯이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부과되는 의무의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가족을 돌보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직업을 가지는 등의 활동에는 온갖 종류의 의무와 책임이 생기니까. 병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이야기의 갯수는 기본적으로 <병의 종류> 곱하기 <의무의 종류> 만큼이나 많다. 

이 소설에는 ‘지니들’이라는 아주 특별한 단체가 나오는데 이들은 심각하게 아픈 아이들의 단 한가지 소원을 실현시켜주는 자선단체 같은 것이다. 이런 단체가 실제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발상 자체가 너무나 재밌어서 이 지니들만 가지고도 이야기 몇 개는 그냥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지니들과 주인공 헤이즐의 특별한 소원, 그리고 헤이즐을 위해서 거스가 자신의 소원을 쓴다라는 조합으로 굉장히 특별한 서사가 만들어진다. 나는 이 부분이 너무나 세련된 서사라고 생각하는데 소원 내용이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서사 속에서 기능적으로도 잘 활용된다는 게 그 이유다. 작가는 소원의 성격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이 소원은 둘의 관계를 이어주었던 매개에 관한 것이며, 실현하기 위해 필연적인 과정이 필요한, 즉 서사를 전개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적인 역할도 하고, 소원이 성취되는 순간에 대한 기대를 만들고, 로맨스의 무대를 만들고, 헤이즐과 거스 사이에 약간의 채무관계를 만들고, 역시 헤이즐에게 의무를 짐지우는 등 온갖 효과를 발휘한다. 사실 내가 죽으면 거스는 어떻하나 하는 헤이즐의 고민은 병류 이야기의 클리쉐에 가깝지만 이런 특별한 서사가 받쳐주기 때문이 이야기 전체의 품격이 올라간다. 

서사 만큼이나 각각의 에피소드들에 녹아있는 주제, 텍스트적인 측면들도 굉장히 강해서(청소년 소설치고 좋은게 아니라 그냥 좋다) 기억전달자를 재치고 북미 넘버원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게다가 이 표현과 상징을 보라. 작가의 세련됨을 느껴볼만한 문단을 하나 인용하면서 포스트를 마친다.


우리는 인디애나폴리스의 평원 한가운데 뚝 떨어져 있는 기묘한 사각형의 로마 시대 폐허 옆에 담요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이건 진짜 폐허는 아니었다. 80년 전에 조각으로 재창조한 폐허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짜 폐허는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고 완전히 방치당해서 이제는 완전히 진짜 폐허가 되어버렸다.




한국 표지도 팬시하지만 이뻐서 냉큼 샀는데, 저 스웨덴 형들의 넘치는 감성을 좀 보소...소설의 본질을 꿰뚫고 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