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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스콧 펙, 거짓의 사람들

by skarly 2014. 7. 28.

 악을 거짓, 자기기만, 나르시즘, 나태함, 권력행사 등의 개념으로 정의했다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측정 가능한 사실로부터 나오는 판단이 아니다. 가치판단이나 윤리적인 판단에 가깝다. 그래서 오직 이것만이 악이다라거나 모든 악의 근원이 이것이다라고 우기기 시작하면 언제든지 책을 덮어버릴 수 있었으나 저자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사실 그런 식의 아포리즘도 좋아한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를 보면 '모든 죄는 도둑질의 변종이다'는 개념이 나온다. 극단적이고, 문학적이고 무엇보다도 살인과 도둑질이 이어져 있으며 사소한 도둑질이란 없다는 암시가 근사하다. 마찬가지로 악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그리고 그 원인으로 나르시즘을 지목한 것은 참으로 근사하다. 이 책에 의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고통에 직면하지 않으려는 게 바로 악이다.


 이 책에 나오는 개념보다도 더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의 스토리텔링 감각이다. 정신치료의 모든 문제를 선택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며 곳곳에서 치료하는 자의 의지와 치료받는 자의 의지가 전투를 벌인다. 현상은 또 다른 현상들을 파생시키고 각각의 현상에 새로운 해석들이 더해진다. 어쩌면 정신치료라는 과정 자체가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본질을 내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작가가 굉장히 뛰어난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하며 그의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정보들을 어떻게 공개해야 하는지, 각각의 사건에 어떤 가치들이 걸려있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마치 스토리텔링 수업을 받은 거 같다. 훈련된 스토리텔러가 아니면 이럴 수 없다. 아니면 진짜 이 작가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그것이 자기기만과 남에 대한 지배로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쉽지 않은 주제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해 나만의 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논리를 추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인과관계에 대한 다방면의 성찰을 의미한다.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가장 온당한 연결을 지으려는 노력,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쪽은 논리를 살펴보는 일, 그리고 사유를 멈추는 순간 그러한 어리석음은 잉태된다. 이를 또 달리 말하면 자신의 기분이나, 필요, 심지어 세계관과 신념을 재쳐두고 다시 한번 그 문제에 관해 꼼꼼하게 따져보는 일이다. 귀찮음을 극복해야 하며 고통을 기꺼이 견뎌내야 가능하기에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된다. 작가도 악을 피하기 위해, 혹은 치료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내 생각에 작가가 말하는 '악을 피하는 것'과 '논리를 추구하는 것'은 내용이 비슷하다. 다만 작가는 '사랑'이나 '하나님', '영적 에너지'라는, 내가 보기엔 다소 요상한 것들을 끌어와서 그러한 에너지의 근원으로 삼고(하여튼 크리스찬들이란...) 나는 인간이 축적해온 지식과 사유에서 근원을 찾는다고 말할 뿐이다. 어느 표현이 더 적절한가?